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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일반

언패킹(Unpacking) - 이삿짐을 정리하는 감성 퍼즐 게임

by infantry0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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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작품. 한글화도 잘되어 있다.

언패킹(Unpacking)은 이름 그대로 짐을 푸는 게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큰 상황 설명 없이 이삿짐을 풀고 정리하는 게 전부인 작품. 퍼즐 게임이라고는 해도 머리 아픈 퍼즐 요소는 없으며, 이 작은 퍼즐적 요소마저도 옵션에서 끄고 마음대로 이삿짐을 정리할 수 있다.

 도트로 섬세하게 그려진 다양한 일상 용품들과 물건들은 각 요소에 따른 다채로운 사운드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플레이하면서 지루하지 않다.
 과도한 액션 게임을 주로 즐기는 유저나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런 잔잔한 작품은 힐링 게임으로 충분하며, 실제 플레이해 보면 알겠지만... 물건을 정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

 제작사는 호주의 인디 개발사 '위치빔(Witch Beam)'으로 'Assault Android Cactus+'를 제작했다. 이후 이 언패킹으로 대박을 터트렸으며, 차기작으로 'Tempopo'라는 퍼즐 게임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게임 인더스트리 기사에 따르면 위치빔은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소규모 스튜디오로 남을 것이라고...

 배급사가 '험블 게임즈(Humble games)'다. 험블 번들을 운영하면서 인디 게임 지원과 배급에도 신경쓰는 곳 중 하나로 출시 작중에 이름을 들어본 작품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이 언패킹을 비롯해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 , 슬더스), 윙맨(Wingman), 포레이저(Forager), 어햇인타임(A Hat in Time , 모자걸!), 템템(TemTem , 짭켓몬) 등...

 물론, 모두 성공작은 아니고 시간이 좀 지나면 자사의 험블 번들이나 험블 초이스로 등장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지만, 흥미로운 인디게임이 많이 포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딸깍딸깍. 힘이 덜드는 이삿짐 정리는 너무 재미있다.

언패킹은 이삿짐을 풀면서 마음에 드는 자리에 정리하는 게임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이 펼쳐지거나 외계인이 난입해 전투를 벌이거나 인형들이 살아움직이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이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정리만 하다 끝이 난다.

 세이브는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언제든 중간에 나갈 수 있다. 한 스테이지를 마무리하면 사진첩에 '내가 정리한 모습' 그대로 사진으로 찍어 앨범으로 저장해 주기에 소소한 만족도를 높여준다.

물건 정리할 곳이 많다!
다 정리하고 나면 엉뚱한 방이나 위치에 놓였다며 빨간 외곽선이 뜬다.

초기에는 방이 하나뿐이지만 점점 올라갈수록 방의 개수와 이삿짐의 크기가 커진다.

 이삿짐 정리가 항상 그렇듯이 이삿짐 속에 다른 방에 들어갈 물건들이 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다 올바른 곳에 가져가야 하는 건 현실이나 게임이나 똑같다.
 이 게임에서는 이게 스테이지 완성을 위한 퍼즐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짐을 다 풀면 잘못된 장소나 위치에 놓인 물건은 '빨간 외곽선'이 그려지게 된다. 이걸 올바른(?) 자리에 넣으면 별이 뜨면서 스테이지가 완성되는 방식.

 올바른 자리라는 게 사실 좀 수상쩍긴 하지만 대충 침대 아래 쑤셔 넣거나 옷장이나 서랍장 안에 안 보이게 넣어두면 완료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얼마나 멍때리며 게임을 했는지 적나라하게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시스템.

스테이지를 완료하면 해당 스테이지에서 내가 한 행동을 그대로 트래커로 기록하는 특이한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다시 보기나 GIF 이미지 만들기(아무래도 크기 문제로 시간제한이 있는 듯)를 지원하므로 나중에 이를 돌려볼 수도 있다.

엔딩곡이 너무 좋다.

 이런 점은 게임 내내 반영된다. 같은 방이 반복 등장하는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진 부분이 조금 있지만, 보통은 플레이어가 놓은 위치 그대로 놓여있다. 이는 마지막 엔딩을 보고 스탭롤이 뜰 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마치 게임 내 주인공이 된 듯. 적당한 그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이 가진 인생의 비슷한 어떤 지점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감성적 요소로 작용하며, 그건 정말로 성공적이다.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 물건도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감성에 젖어들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묘한 쾌감도 있다

게임의 시점은 좀 독특한데, 이 때문에 몰입감도 다른 게임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다.


 내가 짐을 풀고 정리하지만, 주인공과는 확실히 분리된 상태에서 게임이 진행되며, 주인공의 인생 / 삶을 유저가 짐을 풀면서 나오는 생활의 자취를 추적하면서 조립하게 된다. 아마 뼈대인 여성이자 디자이너 같은 정도는 다 같을 테지만, 머릿속에서 완성된 캐릭터는 유저마다 달라질 수 있으며, 이렇게 캐릭터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일부는 현실의 우리 삶과 비교하면서 곱씹어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항상 이삿짐에 싸서 다니는 물건들을 보며, 남이 보기에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우리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기 때문. 정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데 이게 필요한 건가 싶은 것들이 나온다. 정작 지금 내 방에 있는 물건을 둘러보면 중 반 이상은 남들이 보기에는 불필요할 거라 생각되지만... 이런 생각은 조용히 덮어두자.

 집의 모습에 따라 은근히 성공, 실패 같은 가치 판단을 하고 있는 자신에 실망하기도 하고, 갑자기 고난에 빠진 듯 보이면서 당차게 이겨나가는 모습이 은근히 보일 때면 응원하기도 하는 듯. 단순한 게임임에도 일상에 찰싹 달라붙은 소재들 때문인지 묘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미니 게임 요소가 없는 게 좀 아쉽다.

 게임 중 나오는 다양한 장소에는 다양한 숨겨진 요소들이 있다. 라디오나 카세트를 켜서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와 비슷한 주인공의 취향(... 하지만 콘솔 마니아...)에 따라 다양한 게임 타이틀을 감상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꼽는 이 게임의 단점이라면 정말 다양한 물건이 나오지만, 이름이나 설명 태그 하나 달려있지 않다는 것.

 어지간한 물건은 작은 도트로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여성용 속옷과 양말이나 여성용품들(...)은 정말 이게 무엇인지 제대로 놓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초반에 이상한 판때기가 있어서 이게 대체 어디에 둬야 하는 건지 찾을 수 없어 답답했는데, 찾다 보니 이게 마우스 패드라는 걸 알았을 때는 더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는 아기자기한 게임에 잔잔한 음악, 자잘한 물건들의 소음, 주인공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잘 조합된 게임이라는 느낌이다. 남성 게이머로서는 사실 잘 안 쓰는 사진 찍기 기능도 의외로 충실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꾸미기나 언패킹 게임 감성을 기억하고 싶다면 색다른 스타일의 스크린샷을 찍을 수도 있다.

현실의 나와 게임 속 주인공의 삶에서 묘한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면 어지간한 AAA 게임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엔딩까지 보고 나면 너무 짧은 플레이타임이 아쉽지만, 실제 플레이할 때는 이 이삿짐을 언제 다 넣지 싶은 구간도 있을 정도로 정리할 물건이 많다. 물론, 짐하나를 풀기 시작하면 하나하나 놓는 재미에 다 잊어버리지만(...)


 뚜렷하고 강렬한 스토리 라인이 없고, 시작부터 끝까지 물건을 장식하는 게 전부지만. 힐링 게임을 원하는 사람이나 감성적인 접근법을 기대하는 유저라면 라이브러리에 넣어두면 좋을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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